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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35% 난방비 지출” 농촌의 겨울은 더 추웠다

태국인 부부는 냉골같은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달 23일 전북 고창군의 한 작은 시골마을에서다. 가스통은 비어 있었고 가스보일러도 고장 난 상태였다. 경찰은 난방비를 아끼려 방 안에서 장작을 때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졌다고 했다. 불법체류자였던 그들은 10년 전 한국에 정착했다. 악착같이 번 돈을 고국의 자녀들에게 보내다 변을 당했다고 이웃 주민들은 말했다.

농촌의 겨울은 도시보다 더 잔혹하다. 산간벽지엔 나이가 많고 삶이 곤궁한 이들이 더 많다. 그런데 정부의 난방비 지원 정책은 도시 중심으로 짜여진다. 지난 7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농촌 주민의 난방 실태와 정책적 시사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 난방비 ‘도농격차’ 농촌 13만 3천 원, 도시 7만 9천 원

도시가스 비용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가장 효율성이 높은 난방 에너지인 건 사실이다. 열량 당 소요비용을 따져보면 도시가스(116.64원/천㎉)가 프로판가스(221.56원/천 ㎉), 기름(
208.36원/천 ㎉)보다 확실히 저렴하다. 도시 지역에서 도시가스 보일러 보급률은 70%가 넘는다.

하지만 접근성이 취약한 농촌에선 도시가스 보일러 보급률이 40% 남짓에 불과하다. 기름보일러를 쓰는 가구도 30%가 넘고, 프로판가스(LPG) 보일러를 들여놓은 집도 7%를 넘는다. 2.6%(10만 2,770가구)는 요즘 정말 잘 안 쓰는 화목(목재) 보일러를 쓴다. 이 보일러의 도시 지역 이용률은 0.001%다.

농촌에선 상대적으로 더 비싼 난방 연료를 쓴다는 얘기다. 실제로 농촌 가구는 도시 가구에 비해 월평균 연료구입비(2022년 4분기 기준)가 5만 4천 원이 더 들었다. 그리고 이 격차는 매년 더 벌어지고 있다. 가계 총 지출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도시는 4.96%인데 반해 농촌은 8.14%에 달했다. 특히 가장 소득이 낮은 소득 1분위의 경우, 소득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5.3%나 됐다.

■ 낡고 띄엄띄엄 살아서 더 춥다…취약계층은 더 많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농촌 지역은 도시 지역에 비해 구조적으로 난방비 급등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는다”라면서 “1990년대 이전 건축한 단독주택이 62.9%를 차지하는 등 노후주택 비율이 높고 저밀도 분산 거주하는 등 주택의 단열 효과가 도시에 비해 떨어진다”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농촌에 더 많다는 점이다. 농촌 인구의 9.2%(89만 명)가 생계·의료, 주거급여 수급자다. 도시 지역(3.3%)과 비교해 3배 가까이 더 큰 비율이다. 노인(24.0%), 장애인(12.8%), 한부모가족(4.6%) 등 취약계층 비율이 농촌이 도시보다 더 높다.

■ 난방비 지원책은 ‘도시 중심’

그런데 난방비 지원책은 농촌 보급률이 낮은 도시가스 위주다. 올해 초 난방비 급등이 논란이 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1일 난방비 지원 추가 대책을 내놨다.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모든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의 난방비 할인 금액을 28만 8,000원에서 59만 2,000원으로 올리는 내용이다. 하지만 등유와 액화석유가스(LPG)·목재 등 다른 난방 수단에 대한 할인책은 빠졌다. 산업통상자원부 자원산업정책국 관계자는 “다른 난방 수단에 대한 지원책은 기재부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농경원은 “농촌 가구에서 사용 비중이 높은 기름(등유) 보일러는 낮은 기본세율(ℓ당 90원)과 탄력세율(30% 인하)가 이미 적용돼 추가적인 세금 감면 여력이 부족해 난방비 급등에 따른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지적했다. 또 기름보일러도 쓸 형편이 안 돼 농촌 주민들이 대신 쓰는 화목(목재)보일러 에는 ‘에너지바우처’가 지원도 되지 않는다. 에너지바우처는 취약계층에게 도시가스·등유·LPG·연탄 등 난방 연료를 구입할 수 있도록 바우처(현금 혹은 카드)를 주는 제도다.

■ “난방비 지원, 농촌 불리한 여건 고려해야”

농경원은 농촌 지역 내 포괄적 취약계층이 약 45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했지만, 지난해 에너지바우처 수혜를 받은 가구는 21만 3천여 세대 뿐이라 정책 사각지대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난방 환경이 열악한 농촌의 불리한 여건을 고려해 에너지 관련 정책을 조정·확대해야 한다는 게 농경원 연구 결론이다.

책임연구자인 심재헌 삶의질정책연구센터장은 “농촌에 도시가스와 LPG 소형저장탱크 보급을 확대하는 정책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라면서 “장기적으로는 농촌 지역의 주거 여건을 개선하는 사업과 연계해 친환경 보일러 설치 등 주택 자체의 난방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사업 유형을 추가 도입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