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GPU 시장 출사표와 기관 투자자들의 엇갈린 행보
3일(현지 시각)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행사에서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업 강화를 공식화하며 AI 칩 경쟁의 서막을 열었다. 매우 유능한 설계 총괄책임자를 영입했다고 밝힌 그는, 고객의 니즈를 명확히 정의하여 데이터센터와 밀접하게 연관된 GPU 시장을 정면으로 공략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그간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면서도 GPU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그늘에 가려 미미한 존재감에 머물렀던 인텔이다. 하지만 올 하반기 1.4나노(10억 분의 1m) 파운드리 사업 양산을 기점으로 서버용 GPU 시장의 판도를 단숨에 뒤집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인텔의 체질 개선 노력 속에 월가 기관 투자자들의 셈법도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13F 보고서 공시에 따르면, 자산운용사 앨트페스트(Altfest L J & Co. Inc.)는 작년 4분기 동안 인텔 주식 4만 836주를 매각하며 보유 비중을 70.6%나 크게 줄였다. 반면 다른 헤지펀드들은 정반대의 베팅을 이어가고 있다. 롤리 캐피털 매니지먼트와 코런덤 트러스트는 각각 2만 9000달러 규모의 지분을 신규 매수했으며, 골베스트 어드바이저리 역시 3만 4000달러 규모의 주식을 새로 담았다. 프로비넌스 웰스 어드바이저와 파운더스 캐피털 매니지먼트는 보유 지분을 각각 89.2%, 64.0% 대폭 늘리는 등, 현재 기관 투자자들이 인텔 주식의 64.53%를 쥐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빅테크의 독자 노선과 뉴노멀이 된 ‘탈엔비디아’
인텔의 야심 찬 발표를 지켜보는 테크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레 현재의 권력자인 엔비디아를 향하고 있다. 전 세계 AI 칩 시장의 80%가량을 장악하며 제국을 건설한 엔비디아지만, 최근 다양한 도전자들의 등장과 핵심 파트너들과의 마찰로 인해 곳곳에서 균열의 조짐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AI 열풍 속에 엔비디아 GPU 가격이 개당 수천만 원으로 치솟고 최첨단 제품은 구하기조차 어려워지자, 빅테크 기업들은 비싼 칩을 기다리는 대신 자사 AI 서비스와 서버에 최적화된 맞춤형 칩을 직접 개발하는 길을 택했다.
구글은 작년 11월 자사의 AI ‘제미나이’ 성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7세대 TPU 아이언우드를 선보인 데 이어, 올 하반기 8세대 출시를 앞두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지난달 대만 TSMC의 3나노 공정을 활용한 고성능 AI 추론 칩 ‘마이아 200’을 공개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고효율 자체 칩 트레이니엄3, 메타가 올 상반기 내놓을 예정인 MTIA-v3 등 독자 칩 개발 러시는 이제 업계의 거스를 수 없는 뉴노멀이 되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서버용 맞춤형 AI 칩 시장 점유율이 작년 20.9%에서 27.8%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조차 대만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거대한 시장 규모로 인한 끊임없는 경쟁자 진입을 언급하며 장기적인 사업의 고충을 토로했을 정도다.
발목 잡힌 대중국 수출과 우군과의 불안한 동맹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지정학적 갈등도 엔비디아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 미국 정부가 두 달 전 AI 가속기 H200의 중국 수출을 표면적으로 승인했음에도, 안보 검토 절차 문제로 실제 물량 이동은 기약 없이 지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구체적인 판매 조건이 확정될 때까지 중국 고객사들이 주문을 전면 보류하고 있어, 젠슨 황이 작년 말 호언장담했던 연간 500억 달러(약 72조 5700억 원) 규모의 중국 시장 매출은 아직 실제 장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가장 강력한 우군이었던 오픈AI와의 불화설마저 시장의 의구심을 키운다. 양사 CEO가 이를 직접 부인하긴 했지만,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오픈AI의 신규 자금 조달에 투자할 200억 달러는 당초 예상됐던 최대 1000억 달러에 한참 못 미치는 규모다. 실제로 젠슨 황 CEO가 투자 축소 의사를 내비친 가운데, 오픈AI는 이미 브로드컴과 손잡고 독자적인 맞춤형 AI 칩 개발에 착수했다. 하반기에는 이를 도입해 총 10기가와트(G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그동안 개발자들을 엔비디아 생태계에 묶어두었던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 ‘쿠다(CUDA)’를 대체할 다양한 오픈소스 기반 소프트웨어가 속속 등장하면서 오픈AI의 독립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흔들리는 주가와 요동치는 투자자 포트폴리오
겹악재 속에 철옹성 같던 엔비디아의 주가도 요동치고 있다. 3일 하루에만 주가가 2.84% 하락하는 등 3거래일 연속 약세를 보이며 순식간에 시가총액 3000억 달러(약 435조 원)가 증발했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한국예탁결제원과 국제금융센터 자료를 보면, 불과 1년 전 엔비디아 주식을 3억 9000만 달러어치 순매수했던 이들은 올해 1월 들어 2억 5000만 달러어치를 순매도하며 대거 짐을 싸고 있다. 대신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을 3억 2000만 달러 순매수하며 발 빠른 태세 전환을 보였다.
투자자들의 거대한 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반사이익을 노리는 인텔 주식(INTC)은 최근 거래일 기준 62.38달러로 장을 열었다. 이는 50일 이동평균선(47.25달러)과 200일 이동평균선(42.18달러)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현재 시가총액 3115억 9000만 달러를 기록 중인 인텔은 -779.65의 주가수익비율(PER)과 1.35의 베타값을 보이고 있다. 부채비율은 0.35, 유동비율과 당좌비율은 각각 2.02와 1.65로 양호한 유동성을 유지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텔 내부 경영진의 엇갈린 자사주 매매 동향이다. 데이비드 진스너 수석 부사장(EVP)은 지난 1월 26일 평균 단가 42.50달러에 5882주를 총 24만 9985달러에 매입하여 지분율을 2.44% 늘렸다. 이와 대조적으로 에이프릴 밀러 수석 부사장은 2월 2일 평균 단가 49.05달러에 2만 주를 처분하며 98만 1000달러를 현금화했다. 내부자 지분이 0.05%에 불과한 상황에서 나타난 임원진의 이러한 행보는 향후 실적에 대한 시장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다. AI 칩 시장을 호령하던 엔비디아가 거센 비바람을 맞는 사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생존 게임은 한층 더 치열해지고 있다.